[솔밍] Egg-and-Spoon race :: 2.0

2019. 7. 23. 01:47

*Already Gone_Sleeping At Last

*타씨피(윤겸) 언급이 있습니다.

 

 

 

미래가 불안한 사람은 과거를 찾는다. 캄캄한 앞길로 섣부르게 발을 내디뎌 떨어져 죽는 것보다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최한솔과 보낼 시간을 생각하기보다는 최한솔과 보냈던 시간들을 더듬더듬 되새김질하려 지팡이를 짚는다. 내 옆에 곤히 잠든 최한솔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 레드 와인의 검붉은 알코올 향이 내 혀끝으로 새어 들어온다.

 

 

 

 

Egg-and-Spoon race :: 2.0

_remember all the things we wanted

 

 

 

 

나의 일방적인 통보 같은 다정에 사과하지 못했던 최한솔은 두 시간쯤 뒤 와인병과 와인잔을 두 개 들고 서재에 있던 나를 찾아왔다. 형, 와인 한 잔 할래요. 최한솔은 기운 빠진 앵무새의 얼굴로 내게 조용히 물었고, 나는 그래, 답하며 유령 같은 미소를 띄웠다.

 

와인을 기울이며 우리가 나눈 얘기는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기록하기에도 과분한 정말로 하찮은 얘기들과 웃음. 그런 너절한 얘기의 끝에 최한솔과 나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고, 최한솔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나를 두고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나버린 최한솔의 옆에서 나는 홀로 자갈밭을 거닌다.

 

 

 

 

 

 

부쩍 높아진 하늘에서는 제법 가을 티가 났다. 닿지 못할 푸르름이 공활했던 9월의 한낮, 나는 1층 쇼룸 거실 소파에 앉아 통유리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등진 채 잡지사와 새로 잡힐 인터뷰에 관해 통화 중이었다.

 

 

“네, 시간은 오후 1시면 넉넉할 것 같긴 해요. 네, 네.”

 

 

2012년은 전환점의 모음집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작게 사무실을 개업한 지 3년 하고도 반이 지나자 내가 기울인 노력에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디자인 대회 수상을 첫걸음 삼아 이런저런 인터뷰 요청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촬영 소품으로 내가 만든 것들을 쓰고 싶다는 연락도 오고, 꽤 유명하거나 소위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의 집 인테리어 주문을 받기도 했다.

 

 

“사전 질문은 메일로 보내주시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좌탁 위에 올려 둔 달력의 10월 6일 아래에 전화 내용을 대충 끄적이는데 갑자기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내 고개를 잡아 돌렸다. 오늘 예약된 미팅은 없었는데.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일어나 정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인영에게서 떼지 않으며 입으로는 전화에 대고 잠시만요, 를 읊조리고 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쉼을 제작하는 디자인 회사, 휴작입니다. 어떤 거 보러 오셨나요? 아, 여기에―… 하고 작게 웅얼거리는 대화가 조금씩 크게 들렸다. 나는 전화기 너머로 빠르게 상황을 전달했다.

 

 

“죄송한데 고객이 오신 것 같아서. 제가 기억할 것들은 다 말씀해주신 것 맞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뵐게요.”

“네? 의자요? 어떤―”

“안녕하세요. 휴작 대표 디자이너 김민규입니다. 혹시 미팅 예약하러 오셨나요?”

 

 

재빠르게 직원 앞을 비스듬히 막아서며 대화를 가로챘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괜찮으니 다시 데스크로 돌아가란 듯 눈짓을 건넸다. 원래라면 이렇게 끼어들지 않고 직원에게 맡겨놓았겠지만 그러기에는… 나는 쇼룸을 둘러보는 척 내 앞에 낯선 사람의 전신을 곁눈질로 훑었다. 꾹 눌러쓴 빨간 원색의 비니에 록 페스티벌 참가자용 단체 티셔츠 같은 레터링이 박혀 있는 카키색 상의, 게다가 상당히 낡아 보이는 거대한 백팩과 운동화는, 도무지 용무가 있어 찾아온 차림새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그러니까, 젊은 방랑자 같았다는 소리다. 얼굴이 그나마 멀끔하게 생겨서 노숙자라고는 안 한 거지. 하지만 티를 낼 수도 없으니 나는 그저 웃어 보이면서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그의 행동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내 선입견에 확증을 더해줄 뿐이었다.

 

 

“아뇨, 미팅 예약은 아니고… 어! 저거다. 저 의자 찾고 있었거든요.”

“네?”

 

 

내 사무실은 다른 인테리어나 가구 디자인 사무실과는 조금 차별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층의 쇼룸 형태 전시실이었다. 가구 제작과 인테리어 설계를 동시에 하다 보니 나는 고객들에게 내 디자인 스타일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향이 내 제작물들로 가득 찬 실제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련된 것이 실제처럼 꾸며놓은 쇼룸 형식의 전시실이었다. 공간은 카페, 주택, 사무실 등 다양했는데, 그중 빨간 비니의 낯선 사람이 집은 의자는 주택 공간에 샘플로 놓인 원목 의자였다.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그쪽으로 발을 옮기는 그에 나는 조금 당황해하다 그의 보폭을 얼른 쫓아가 그보다 먼저 의자 등받이를 잡았다.

 

 

“저, 고객님, 정말 죄송하지만 이건 판매 물품이 아니거든요. 특별히 소품으로 제작되었던 거라서 한정된 샘플이라―”

“아, 정말요? 아…. 전혀 판매가 안 되나요? 주문 제작도 안 받으시는 거예요?”

“네…. 이건 작품용 성격이 더 강한 거라서… 죄송합니다.”

”아……. 아쉽다. 촬영장에서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어서 소품 관련 스태프 분께 여쭤보고 찾아온 거거든요.”

 

 

그런데 이걸 어디서 보셨어요?라고 이어지려던 내 질문은 네? 뭐라고요?로 바뀌어 튀어나왔다.

 

 

“아, 제가 그, 작은 촬영 같은 걸 하나 했었는데 그때 제가 이 의자에 앉아서 찍었거든요. 느낌도 되게 좋고, 디자인도 취향이라서 마음에 들었었어요.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비판매라니 아쉽게 됐네요.”

“잠시만, 잠시만요. 그러니까 그 촬영에 모델이셨다는 거예요? 스태프 이런 거 아니시고?”

“어… 예. 맞아요.”

“… 잠시만요.”

 

 

진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짧게 말을 뱉은 나는 그대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사무실 한쪽 벽면에 자리 잡힌 책장에서 잡지 하나를 빼어 들고 다시 뛰어 내려왔다. 계단 한 칸에 종이 대여섯 장이 휙휙 급하게 넘어갔다. 그 인터뷰가 어디 있었더라, 여기… 이쪽 어디쯤에…… 아. 찾았다.

 

당신의 목적지가 되어줄 수는 있어도 지도는 될 수 없는 여행자,

 

 

“… 최한솔?”

“네?”

 

 

12년 9월에는 꽤 굵직한 터닝포인트들이 있었다. 첫째 주에는 메이저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고, 그 다다음주에는 해외의 작은 언론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분명히 한정 샘플이라고, 작품에 가깝다고 단단히 일러놓았던 의자에 어느샌가 느른히 기대앉아 내 호명에 땡그랗게 눈을 뜨던 최한솔, 너는 그중 세 번째 전환점이었다.

 

 

 

 

 

 

“어디세요?”

- 거의 다 왔어요. 저, 민규 씨 보여요.

“아, 저도 보이네요.”

 

 

상상도 못한 정체로 나를 놀라게 했던 그 날, 최한솔은 내 연락처를 받아 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꼴이 그랬던 건 여행에서 돌아온 당일이어서 그랬단다.) 개인적인 주문을 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개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자신의 집 인테리어도 맡기고 싶다고 했다. 내 스타일이 단단히 마음에 들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업무 외 내용으로도 내게 끊이지 않고 연락을 해왔고, 마침내, 보고 싶은 전시회가 하나 있는데 나도 좋아할 거라며 같이 보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최한솔이 마음에 들어한 것은 내 스타일보다 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국 현대미술 좋아해요?]

[제대로 본 적 없어요.]

[볼래요? 이번에 과천에서 하는데. 민규 씨도 좋아할 것 같아요.]

[언제요?]

[토요일 괜찮아요?]

 

 

어쩌면 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는 물음을 목전에 두고, 나는 그가 실렸던 잡지를 다시 꺼내보았다. 이미 한 번 찾았던 페이지라 이번에는 수월하게 그가 등장하는 장으로 넘길 수 있었다. 당신의 목적지가 되어줄 수는 있어도 지도는 될 수 없는 여행자, 최한솔. 뭔 말이야, 이게 도대체? 그리고 다시 마주한 인터뷰 제목은 두 번째 읽어도 무슨 말인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그가 여행 에세이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터뷰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뿐, 인터넷 검색은 곧바로 해봤으니까. 나는 첫 문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 시중의 많은 여행 에세이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작가가 책의 주인이 된 나라를 선택하게 된 경위(보통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의 도피처로 선택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뒤에 그 나라로 떠나기 위해 작가가 행한 여러 준비들. 하지만 최한솔 작가의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모월 모일 밤 10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 ’ 이후는 암스테르담의 이야기뿐이다. 우리는 암스테르담으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의 최한솔은 알 수가 없다. 비단 암스테르담뿐만이 아니다. 그는 모든 나라를 아무렇게나 가고, 도착해서도 그의 행보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 그에게는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은 그저 그 날 바람이 이끄는 대로, 눈길이 닿는 대로, 또, 신호등이 깜박이는 대로다. 》

 

그는, 무계획 여행자였다. 어느 날 어느 곳에 문득 가고 싶어 지면, 그는 평균 날씨 정도만 확인하고는 짐을 꾸렸다. 그리고 그가 가고 싶은 날에 떠나서, 가고 싶은 곳을 갔다. 가장 어려워 보이고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방식의 여행이 실은 모두의 이상향이자 가장 평범함을, 최한솔은 알았는지, 그는 그런 여행을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씩 정독하고 나니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미묘한 긴장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가 데이트를 신청하며 보여준 오만함을 마뜩잖아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봤다고 내가 뭘 좋아할지 안 할 지 안대. 민규 씨도 좋아할 것 같아요, 라는 말이 화면에 올라왔을 때 들었던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탁, 소리 나게 덮인 잡지와 함께 반쯤 접혔다. 그가 던진 말은 정말로 ‘던진’ 것에 불과해 보였다. 맞아도 그만, 안 맞아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다트판에 던진 다트침처럼 머리보다는 손가락으로 만들어 낸 말. 그래서 나도 그에 걸맞은 답장을 보냈다. [그래요.]

 

 

 

 

 

 

전시회는, 최악이었다. 처음에 전시회장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다소 건방진 도전정신도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얼마나 내 취향에 맞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민규 씨도 좋아할 것 같아요, 그가 반쯤은 손버릇으로 만들어냈을 게 분명한 말은 생각보다 더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내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듯했다. 이건 아마 그의 의중과는 다른 결과였을 거다. 물론 내 예상과도 전혀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그의 말은 내 오기의 묘한 지점을 건드렸다. 머릿속 한복판에 대롱 매달려 있던 물풍선이 펑, 터져 내 머리통을 넘실거리는 물로 가득 채운 것처럼, 나는 약속 날까지 그 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가 얘기한 전시회를 미리 찾아보지도 않았다. 어쭙잖은 스포일러는 잔상을 남겨 선입견이 될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깨끗한 머리로 그를 만났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행사는 들어가기 전 했던 결심을 잊어버릴 정도로 내 취향이 아니었고, 나는 하릴없이 기계적으로 발만 옮기다 출구로 나왔다.

 

단정한 갈빛 로퍼 한 쌍과 하얀 하이탑 스니커즈 한 쌍이 나란히 출구에서 세 걸음 걸어 나온 뒤 멈춰 섰다.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비니를 쓰지 않고 밝은 황갈빛 코트를 입고 온 오늘의 최한솔은 내 걸음에 맞춰 멈춰 서선 살짝 올린 시선으로 내 눈을 마주 보았다. 티끌 없는 눈이 내게 꽂혀왔다. 그리고 나는 그 눈에 단도를 꽂을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도 돼요?”

“네, 괜찮아요.”

“전시회, 진짜 별로였어요.”

“그랬어요?”

“네.”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면서요. 그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고 너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뉘앙스는 전해졌으리라. 나는 최한솔의 답을 기다렸다. 나를 위로할지, 사과할지, 또,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부리면서 다음 약속은 정말 내 취향일 거라고, 포장을 할지. 하지만 최한솔은.

 

 

“나도 진짜 별로였어요.”

“… 네?”

“내 취향 아니더라.”

“허… 참 나. 그럼 왜 보자 했어요?”

“그냥, 궁금하잖아요.”

“내가 좋아할 거라면서요.”

 

 

결국 이 말을 하는구나. 내가 그의 인터뷰를 읽게 만들고, 며칠 내내 내 머리통을 메우고, 괜한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던.

 

 

“제가 그랬어요?”

“하. 진짜… 웃기는 사람이네. 네, 그랬어요, 한솔 씨가. 보여줘요?”

“그랬구나…. 미안해요. 근데 의미 없이 한 말은 아니에요.”

 

 

뭐래니, 얘.

 

 

“아마… 민규 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다가 보낸 거라 그랬을 거예요. 제 나름대로는, 생각을 계속, 했으니까.”

 

 

최한솔은 나에게 대화라는 행위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게 만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심지어 나를 그렇게 만드는 사람은 말하는 속도도 반 박자 느려서 그의 말을 듣다가 그렇지 않아도 없던 할 말까지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몇 가지가 없었다. 지금도.

 

 

“뭐를요?”

“민규 씨에 대한… 예상들?”

“그럼 일단 하나 틀렸네요.”

“반증은 차후 수정될 가설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에 기여하죠.”

“원래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럼 말을 어떻게 해요?”

“심지어 이건 우리 둘 다 별로였다며. 그게 쓸모가 있어요?”

 

 

나는 손에 구겨진 팸플릿으로 최한솔 뒤편의 전시장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지지 않은 가을 햇살이 쨍하고 눈에 비치는 게 밝아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최한솔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제가 들고 온 팜플렛으로 내 머리 위에 차양을 만들어준 것도 그때였다.

 

 

“좋아하는 게 같은 사이보다 싫어하는 게 같은 사이가 더 오래 가요.”

“누가 그래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한솔 씨 진짜 모르겠다.”

“그럼 이제부터 알아볼 생각은 있어요?”

“…….”

“나도 민규 씨 몰라요. 추측만 많지. 근데 오늘 하나 알았죠. 우린 중국 현대미술이랑 안 맞다는 거. 이다음엔 영화 봐요. 그래서 또 싫어하는 거 알려줘요. 그럼 나는 하나씩 지울게요, 내가 세워 놓은 가정들 중에서.”

“그럼 뭐가 남아요?”

“민규 씨가 싫어하는 걸 빼고 다 할 수 있는 우리요.”

 

 

2012년 가을은 유달리 일이 많았다. 나는 사무실을 확장했고, 사업적으로 꽤 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었으며, 미팅이 부쩍 늘었고, 가족들의 안심과 축하가 이어졌으며, 걸려오는 연락이 많아졌다. 그리고 가을의 한중턱, 10월의 어느 날에 나는 최한솔과 영화를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