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밍] Egg-and-Spoon race :: 0.0

2019. 6. 18. 18:29

*Used to you_Dagny

*타씨피(윤겸) 언급이 차후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다. 진짜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지는 키워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명제가 참인 세계에서 나는 고양이었고, 호기심은 최한솔이었다. 최한솔은 매 순간 날 죽이고 있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Egg-and-Spoon race :: 0.0

_i’m missing my heart race

 

 

 

 

한 개, 두 개, 세 개. 녹은 마시멜로를 주욱 잡아당겨 늘어뜨린 모양의 비행운 세 가닥이 하늘에 길게 걸려 있었다. 아까 주차시킬 때만 해도 한 개였는데 언제 세 개나 됐대. 예쁘다. 오늘 하늘색도 예쁘고. 벤자민무어 기준으로 따지면 블루진 색상에 가까운 느낌? 사진 찍어놨다가 좀 응용해서 디자인해볼까. 유리랑 원목이 잘 나가니까 같이 써서 루버 셔터 디자인할 때―…… 아니다, 됐다. 직업병은 무시 못 한다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시작한 감상이 어느샌가 일상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얼른 머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담배나 한 대 피자. 센터 트레이에 대충 던져놨던 담배곽을 집어 들고 차 문을 열었다.

 

 

“덥네….”

 

 

문을 열자마자 훅 덮쳐오는 열기와 페스티벌 환호에 버금가는 매미 소리가 7월을 요란스럽게도 광고하고 있었다. 이런 더위와 소음은 매년 겪는데도 적응되지 않는 꼴이 꼭 최한솔같아서 새싹 같은 짜증이 돋았다. 손에 들고 있던 곽의 종이 뚜껑을 툭, 엄지로 퉁겨 열었다. 새까만 곽에 휘장처럼 드리운 푸른 무늬가 젖혀지면 말린 나뭇잎 냄새에 멘솔 특유의 화함과 달달함이 뒤섞인 향이 더위를 타고 아지랑이처럼 올라와 약간의 환기를 선사한다. 어휴, 내가 기댈 구원은 너밖에 없다, 아이스 블라스트야.

 

난 다른 멘솔 담배보다 아블 냄새가 좋았다. 맛이 제일 좋다고는 장담 못 하겠는데, 그냥 내 타입이었다. 소다 냄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여튼. 담배를 코 아래에 가져다 대고 약하게 킁킁거리다 한 개비를 이로 물고 잡아 꺼냈다. 위치를 맞추고 앞니에 힘을 주자 빠그작, 캡슐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퍽 시원하다. 곽에 든 담배를 모조리 꺼내 캡슐만 다 씹어 터트리고 싶을 정도로. 당장이라도 실행에 옮길 것처럼 곽을 물끄럼 내려다보다 이게 무슨 싸패적 생각인가 싶어 곽을 닫곤 불을 붙였다. 더워서 그렇다. 더위가 사람을 괜히 난폭하게 만든다. 열병이 힘들지, 원래. 근데 난 어째 이 열병의 원인이 더위가 아닌 것 같냐. 금세 후룩, 인 불길을 머금고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배 끝을 보고 있자니 램프에서 튀어나온 지니처럼 최한솔이 일렁인다.

 

형 안 더워요? 여름에 담배를 피고 있으면 최한솔은 꼭 그렇게 물었다. 내가 연기를 마시지 불을 먹니. 별 차이도 안 느껴져. 게다가 금방 뱉잖아. 궁금하면 너도 피던가. 하면서 곽을 내밀면 아뇨. 난 쌀쌀해질 때만 피잖아. 괜찮아요. 같은 이해 못 할 소리를 뱉으며 내 제안을 거절하곤 했다. 요즘 담배에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손난로 기능도 추가됐나 보구나. 아니, 애초에 이게 날씨 따라 폈다 안 폈다 할 수 있는 거였냐고.

 

후욱, 연기를 뱉어내니 여름에 입김을 뱉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이따 최한솔 오면 말해줄까. 그럼 한 번 펴보지 않을까? 걔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나는 폰을 꺼내들었다. 차문에 비스듬히 기대서 통화를 하려다가 내 등판을 오징어 버터구이처럼 노릇하게 익히고도 남을 온도에 화들짝 똑바로 서곤 통화 목록 제일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름을 눌렀다. 너는 별다른 지체 없이 내 전화를 받았다.

 

 

“야, 어디까지―”

- 나 이제 지인짜 거의 다 왔어!

 

 

어이쿠, 깜짝이야. 좀처럼 듣기 힘든 최한솔의 고함에 미간이 움칠 놀랐다. 얘한테 큰소리를 이렇게 듣네, 내가. 나도 모르게 폰을 귀에서 살짝 떨어뜨렸다 다시 갖다 댔다. 그러니까 그게 어딘데, 하고 되물으려는 찰나, 전화기 너머에서 아 네네, 네, 여기서 턴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하는 최한솔의 목소리가 들린다. 초조하긴 했나 보다. 천하의 바다거북이 네를 세 번이나 쓰고. 나는 폰을 귀에서 떼지 않고 택시가 들어올 법한 주차장 입구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매미 울음이 잘 들리지 않는 왼쪽 귀로 택시 특유의 깜빡이 소리와 함께 약한 바퀴 소리가 최한솔의 긴장 섞인 침묵 틈으로 들려왔다.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 나 보여?

“아니, 아직 안 보이는데.”

- 잠만… 좀 있으면 보일 거예요. 난 보일 거 같거든, 슬슬.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 주욱 늘어선 차들 너머로 자그마한 초록색 택시 등이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처럼 슬그머니 움직여 다가오는 모습이 내 시야에도 들어왔다.

 

 

“아, 보이네.”

 

 

좁쌀만 한 이끼같이 보이던 등이 거북이 등딱지가 되고, 거북이 등딱지가 택시로 변하는 모습을 꾸준하게 쫓으면서 짤막하게 보고를 하자 어… 나도. 하고 평소 같은 아디지오 박자의 목소리가 돌아온다. 그리고 이내 전화기 너머와 내 전방 10미터쯤의 거리에서 형!! 하는 부름이 동시에 들릴 때 나는 드디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 진짜 진짜 미안해요. 정말로. 진짜 미안.”

“일단 짐이나 꺼내. 기사님께 돈은 드렸어?”

 

 

구둣발로 짧아진 담배를 지져 끄고, 최한솔이라면 어쩌면 까먹었을지도 모를 행동을 챙겨 물으면서 기사를 쳐다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런데 기사도 나를 보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 그리고 나를 보는 그 얼굴이 평생 도시전설로만 들어왔던 외계인의 침공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경악과 암담함으로 얼룩진 걸 보고 나는 최한솔이 뭐라 말했을지 정도는 넉넉히 짐작했다. 진짜 죄송하지만 차 좀 다시 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애인이랑 한 약속을 까먹어서요. 택시 안 룸미러에 달랑거리는 십자가가 앙증맞다.

 

돈? 당연하죠. 그걸 왜 까먹어. 지지 않을 요량으로 나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택시 뒷좌석에 실어놨던 등딱지를 챙겨 입고 트렁크 속 캐리어도 야무지게 손에 든 최한솔이 내게 다가왔다. 그래? 안 까먹었구나. 오늘은 좀 까먹어도 좋을 뻔했는데. 최한솔이 내 차로 짐들을 옮겨 실을 동안에도 기사는 눈을 못 뗐다. 아, 저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알았는데. 아, 그래. 혐오. 콧잔등에 살짝 미끄러진 선글라스를 가운뎃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욕한 건 아니다. 그냥 마침 선글라스가 내려왔더라고.

 

 

“형. 나 다 실었는데.”

“가자.”

 

 

최한솔의 목소리에도 고개는 돌리지 않고 뒷걸음질만 쳐 운전석을 열었다. 차에 올라타면서 보니까 이젠 아예 핸들에 고개 처박고 기도 하고 있더라. 에라이 씨발. 하여간 지랄도 가지가지다. 거기 처박은 김에 그대로 50년만 기도하세요, 아저씨― 우린 당신 기도 덕에 천국 갈 테니까. 시동을 걸고 최한솔이 올라탄 조수석 문까지 닫히자 액셀을 꾸욱 밟으며 최한솔에게 물었다. 야, 저 아저씨 너한테 외국인이 한국말 잘하네, 어디서 배웠냐, 뭐 그런 거 물어보지 않던? 그리고 역시에는 예외가 없다.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내가 관상을 좀 보거든.

 

 

 

 

 

 

인천공항 근처 주차장을 나와 고속도로로 차를 올릴 때까지도 최한솔은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다기보다는 말을 못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선글라스 다리 안쪽으로 검지를 밀어 넣어 관자놀이를 약하게 문지르던 나는 틀어놨던 카오디오의 전원을 껐다. 사소한 내 손짓에도 최한솔 주변의 기류가 흐트러지는 게 느껴진다.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내가 틈을 주지 않으면 집에 들어갈 때까지 최한솔은 나만 살피고 있을 게 뻔했다. 최한솔은 상처를 받는 것에는 무뎌도 자신이 상처를 주는 것에는 지나치게 예민했고, 심지어 그 대상이 나라면, 거기다 그런 상처의 유형이 계속 반복되어 온 것이라면 최한솔의 예민성은 극에 달했다. 그렇게 뱅글뱅글 제자리돌기만 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최한솔은 민규 형, 내가 잘못했어요.로 운을 틔운 대서사시를 가지고 왔다. 그 속에는 내가 해왔던 말들, 네가 내 말에 한 반응들, 또 거기에 내가 보인 반응들, 그리고 그 틈새마다 끼어있는 감정의 조각들까지 모조리 나열되어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게 정말, 너무, 너무 싫었다.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라며 화를 내면 거기에 또 미안하다고 하는 너까지 전부 다. 바로바로 얘기하면서 풀면 되지 않냐고, 왜 쓸데없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냐고 하니 그 뒤로는 싸울 일이 생기면 형, 진짜 죄송한데 저 생각 정리 좀 하고 말하면 안 될까요. 하고 나한테 허락을 구하길래 다 포기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냥 내가 말거리를 던졌다. 그게 편했다.

 

 

“… 미안해요.”

“또.”

“… 잘못했어요. 매번 약속했는데.”

“또.”

“자꾸 같은 실수 반복해서. 진짜 미안해요. 화 많이 났죠.”

 

 

최한솔이 말을 이어나갈 수 있게 기계적으로 짤막한 연결고리를 툭툭 던지다 마지막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화가 많이 났냐고? 그러게. 나 화났나, 지금? 아니면, 화를 내야 하나? 정말 간단한 질문인데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게 어떤 기분이냐면 그러니까, 명절날 오랜만에 만난 고3짜리 사촌동생이 수학의 정석 연습문제를 물어보고 있는 기분? 분명 까마득한 언젠가는 답을 알았던 것 같은데 지금 나한테 남은 건 알아볼 수 없는 미지수들밖에 없는 것 같다. 네 질문과 내 감정은 좌표평면 위에서 각자 다른 포물선을 그리고, 교점은 없다. 엊그제, 사막에서의 날들을 갈무리하고 있던 최한솔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인천공항에 최한솔을 데리러 가겠다고 했고, 최한솔은 오케이 했다. 그래서 오늘 한 시간 반을 달려와 최한솔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애인 놈은 나랑 한 약속은 새까맣게 까먹은 채 호모포비아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저 멀리 떠 가고 있었더라는, 그런 얘기. 그게 지금 벌어진 일들이었다. 되짚어보면 상직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봤을 때 내가 화를 내야 하는 입장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온했다. 꼭 너를 기다리면서 봤던 새파란 하늘처럼.

 

내가 답이 없자 최한솔은 잔뜩 화난 고슴도치를 안아 올려야 하는 사람처럼 더욱 불안해진다. 때마침 최한솔의 전화가 울렸고, 나는 그 덕에 대답할 시간을 좀 더 벌었다. 오른손을 가볍게 내저어 받으라는 듯 손짓하자 최한솔이 전화를 받는다.

 

 

“네, 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한솔은 딱 두 글자를 뱉었을 뿐이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군지 눈치챘다. 최한솔의 스케줄을 꿰고 있다가 입국 시간쯤에 맞춰서 전화를 걸어 올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너는 아, 네. 알겠어요, 정한이 형. 그렇게 할게요. 하고 대답한다. 흘긋 룸미러로 최한솔을 살피는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어 번 더 네, 네, 하던 하던 대답이 네? 하는 의문형으로 바뀌었다.

 

 

“아… 방금, 만났어요.”

 

 

내 얘기구나. 나를 살짝 돌아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하는 대답에 바로 알아차렸다. 그럼 정한이 형이 그러겠지. 방금? 뭐하다 방금 만나?

 

 

“그게… 어쩌다 보니. 하하.”

 

 

이거 봐. 아, 나 이렇게까지 잘 맞춰도 되나. 드디어 사무실 접고 떼돈 벌 때가 온 거 아냐? 점집 이름은 경쟁력 있게 ‘당신 마음에 박힌 그 점 빼주는 집’으로 해야지. 시답잖다고 하기에도 과분한 잡생각만 하고 있으니 어… 안 그래도― 하고 곱아드는 최한솔이 들린다. 아, 답답해. 오른손을 공중에 대충 아무렇게나 휙휙 휘저었다. 의문 어린 최한솔의 눈동자를 훌쩍 돌아봤다가 스피커폰, 스피커폰, 하니 아, 하며 폰을 귀에서 뗀다.

 

 

- 야, 뭐라는 거야? 하나도 안 들―

“형. 저 민균데.”

- 어, 안녕 민규야. 한솔이 픽업했다며.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얘기 중이었으니까 중요한 얘기 끝났으면 이따 다시 걸어.”

- 아하. 오키―

 

 

한솔이 몸조심해― 민규야, 우리 솔이…, 저 형 저거 또 우리 분위기 심상치 않다 싶으니까 말 많아지는 거 봐. 하여간 눈치만 더럽게 빨라가지고. 저건 걱정이나 위로가 아니라 백 퍼센트 흥미다. 우리 싸우는 것 좀 재밌어하지 말래도 절대 안 듣는다. 왜애. 너네 사랑싸움만큼 귀여운 게 또 없어. 지랄, 개뿔이. 사람 속에 천불 나는 소리 하는 거로 자격증이 있다면 이 형은 분명 1급은 고사하고, 나라에서 스카우트하러 왔을 거야. 국가적 인재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뭐라 주절주절 길어지는 윤정한의 장난스러운 타박은 다 들어줄 필요도 없어 전화기 끝을 검지로 톡톡 치고 끊으라는 표시로 목 긋는 시늉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그래도 윤정한한테 미안해서 멋쩍은 웃음만 흘리며 윤정한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최한솔이 오늘은 내 손짓에 곧바로 종료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꽤 단호한 손길에 윤정한의 목소리가 싹둑 잘려나갔다. 꼬시다, 윤정한.

 

 

“…….”

“…….”

 

 

전화가 끊기자 정적은 잽싸게 우리를 파고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 대답 안 해줬구나. 뭐라 할지 아직 못 정했는데. 윤정한과 최한솔이 답답해서 전화는 끊었는데 끊고 나니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였다. 화가 났다고 하기엔 거짓말 같고, 안 났다고 하기엔 호구 같고. 최한솔은, 최한솔은… 그냥 바보고.

 

고속도로가 끝났다. 이제 정적도 끝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답 대신 그냥 다른 문제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최한솔.”

“어, 어.”

“배 안 고파?”

“… 조금…?”

 

 

그래? 난 배고픈데. 신호등에 멈춰 서 그렇게 말하자 그게 또 저를 면박 주는 줄 알고 최한솔은 약하게 기가 죽는다. 난 너 기죽는 거 보기 싫은데, 최한솔. 힘을 뺀 손으로 네 팔을 툭툭 쳤다.

 

 

“네 폰, 블루투스 연결해 봐. 노래 듣고 싶어, 나.”

“아. 잠시만.”

“그리고, 오늘 일은,”

“… 응.”

“잊어. 나도 잊을 테니까. 멀리 나갔다 온 사람한테 이런 거로 화내고 싶지도 않아. 너 한 두 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카톡 안 한 내 잘못이지, 애초에. 문자로 남겨 놨어야 되는데.”

“… 미안.”

“됐어. 타박하려고 하는 말 아니고, 진심이야. 다음부턴 카톡 해줄 테니까 너도 일정에 적어놔.”

“응. 꼭 그럴게요.”

 

 

초록불이 됐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나는 내가 한 말을 곱씹었다. 이 정도면 된 건가? 잘 말했나? 근데 난 왜 이렇게 자꾸 내가 오늘 하는 말들이 전부 그린라이트가 아닌 것 같을까, 한솔아. 자꾸 복잡하게 엉키려는 내 머리 대신 핸들을 꺾자 집 가는 방향과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최한솔이 물어왔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

 

 

“밥 먹으러.”

 

 

어디 가겠어, 내가. 엊그제 통화에서 네가 한국 오면 먹고 싶다던 된장찌개 먹으러 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