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밍] 백야_上
2020. 1. 2. 01:25할머니에게 내가 천하의 죽일 놈이 된 것은 정확히 열일곱의 여름이었다.
해는 뜨겁고, 바람은 무더웠다. 오 분의 외출에도 이마는 어느새 젖어들어 이슬처럼 땀방울이 맺혔다. 그리고 그런 여름에, 우리는 유배 명령을 받았다.
“한솔아. 우리, 할머니 계신 곳으로 가야 할 거야. 할머니께서 많이 안 좋으시대.”
어머니께서는 나와 동생을 동시에 불러놓고 그 소식을 전했고 동생은 할머니의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그곳으로 향해야만 하는 이유에는 단순히 할머니의 병 악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결국, 무너진 피사의 사탑이 되어버렸음을, 나는 최대한 안타까움을 담으려고 애쓰면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읽어냈다. 새까만 동굴 그 너머에는 차마 숨기지 못 했던 미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기울어진 가세를 어디로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마침 잘 되었다, 하고 가닥을 잡는 그 눈동자를,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목격자는 말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 선생님께는 제가 먼저 말씀 드릴까요? 그 한 마디만이 내게 주어진 최선이었다.
그리하야 나는 17 살의 여름, 이름도 모르는 어느 마을 고등학교 1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내가 이사가는 마을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20분은 더 가야 있는, 읍내의 어느 학교로.
내 첫사랑의 성냥이 부러진 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 육시럴 놈을 내쫓아야 혀―! 온 집안에 저것 때문에 화상이 닥칠 거다!”
아버지의 차로 꼬박 여덟 시간을 달렸다. 중간에 멈춘 휴게소에서 나와 내 동생은 핫바 하나도 함부로 사 먹지 못 했다. 동생은 먹고 싶어 했으나 어머니는 곤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고, 아버지는 뒷짐을 진 채 먼산을 응시헀다. 결국 그런 동생을 설득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우리 오랜만에 할머니 댁 가잖아. 할머니께서 갈비도 준비해 놓으셨을 텐데, 굳이 왜 핫바를 먹으려고 해. 우리의 원행은 그런 순환의 반복이었다. 차가 막힌 것은 아니었으나 통행료를 받지 않는 길로만 가려니 짧은 길도 뱅글뱅글 돌아야 했다. 땅 하나 밟는 것도 남의 주머니에 동전 하나 쑤셔 넣어줘야 가능한 일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공들여 간 여정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갈비가 아닌, 유리 재떨이였다.
“썩을 것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오냐―!”
아버지께서 먼저 문턱을 넘고, 그 뒤를 동생이 넘고, 그 뒤를 어머니, 마지막으로 나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졸다가 깬 내가 행동이 굼떴던 탓에 그리 된 순서인데, 내 환영인사는 할머니의 인사 대신 귀 옆에서 터진 유리 재떨이의 파편이었다. 문턱을 넘어선 오른발 뒤의 왼발을 할머니의 공간에 들여놓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머니! 이게 무슨 짓이세요!”
“아범아, 네 눈에는 저게 안 보이냐? 너 어쩌다 저런 것을 붙여서 왔어! 응? 아이고, 공주야, 어멈아, 이리 와라, 저 잡귀헌티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혀.”
할머니가 일컫는 ‘저것’, ‘잡귀’, ‘썩을 것’ 은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나였다. 그 모든 대명사들은 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놀란 아버지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할머니는 애타게 내 동생을 불렀고, 어머니를 울부짖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침잠하는 위화감 속에서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가 목격한 할머니의 치매였다.
이사를 빙자한 유배에 동참하면서 내가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은 시기였다. 우리가 거처를 옮긴 시기는 7월 중순이었다. 이 말인즉슨, 나는 두 달은 더 있어야 전학을 할 수 있는 여름 방학의 중턱에 대뜸 낯선 이주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 마을의 얘기만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 가족에서도 이방인이었다. 할머니와 한 지붕을 진 덕분이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 얘, 상혁아. 너 저 육시럴 놈이 어쩔 줄 아냐. 응? 저게 우리 집안의 피를 말려 죽일 거야. 우리를 죄다 나락으로 떨어뜨릴 게야―…”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 아니면 동생을 안고 벌벌 떨면서 방언 같은 욕설을 퍼부었다. 어머니, 한솔이예요, 어머니 손주요. 너무 예뻐하셨잖아요. 한소리인지 잡소리인지 나는 모르겠고 당장 저거 내다 버려라. 나는 저 미친 거이 우리 집 문지방 넘는 꼴 절대 못 본다. 상혁아, 어멈아. 한결이한테도 옮으면 어쩌려 그러니. 처음에 어머니,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할머니에게 나를 상기시켜보려 했다. 그러나 차도는 고사하고 되레 정도가 심해지는 날이 거듭되자 어머니, 아버지는 할머니와 나 사이에 재건하려던 연결고리를 서서히 포기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웃기게도 동성애였다.
“어머니, 대체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너는 모른다. 상혁아, 너는 몰라. 저 쓸모없는 놈은 어느 날 남정네랑 붙어먹어서 너랑 어멈 눈에 피눈물이 철철 흐르게 만들 게다, 우리 너이의 눈깔과 심장을 시뻘겋게 까뒤집어 놓을 거야. 아이고오, 시상에―”
어디서 보았던 무엇이 할머니에게 그것을 각인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억이 조각나기 전, 할머니의 무의식을 짙게 물들였던 것은 동성애였고, 그에 대한 인상은 첫째 손주인 나를 매개로 할머니를 두려움에 전율시켰다. 원인이 무엇이든 더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강아지 같던 손주는 이제 집안의 씨를 말릴 몹쓸 놈 일 뿐이었다. 차도는 없었다. 되레 정도가 심해지는 날이 거듭되자 어머니,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나를 되살려주고자 하던 계획을 포기했다. 할머니에게 초점이 맞춰졌던 최선책이 좌절되자 차선책의 초점은 자연스레 내게로 옮겨왔다.
나를 볼 때마다 이 사단이 반복된다면, 할머니가 나를 보지 않으면 됐다. 그때부터 할머니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나는 할머니와 한 집에 살지만 살지 않는 존재처럼 지내야 했다. 나에겐 맨 끝 방 하나가 주어졌다. 식사도 따로, 할머니가 깨어 있을 때 외출은 최소한으로. 인터넷은커녕 TV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촌구석에서 후덥지근한 방 한 칸에 갇힌 채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었다. 처음엔 나를 가엾게 여긴 동생 덕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동생이 이 방을 드나드는 모습을 할머니에게 들킨 뒤로는 그마저도 줄어들었다. 습기를 머금어 눅눅한 이부자리 위, 내 주요 일과는 마당에서 매미 소리 틈새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발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죄인은 없고 죄목만 뚜렷한 유배는 그런 것이었다.
사부작이는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호지가 덧대어진 미닫이 문 손잡이에 조용히 손가락을 끼웠다.
“…….”
기척 없는 마당은 햇살만 한가득이었다. 등 뒤로 문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나는 발을 슬리퍼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
“―!”
대문을 향해 냅다 뛰었다. 대문에는 할머니가 함부로 나갈 수 없게 꽤 복잡한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그건 치매가 갉아먹는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고작 열일곱, 흔한 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등학생, 그것도 탈옥에 목마른 남자아이에게 그 정도 자물쇠는 한두 번 열다 보니 금방 손버릇이 되었다.
찰칵. 문을 닫고, 문 안쪽의 잠금쇠가 걸리는 소리까지 듣고 나자 그제야 좁은 흙길을 가득 메우는 매미 소리가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쓰앰 쓰애앰― 잡아먹힐 듯한 소리의 한가운데서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보았다. 어디로 가지. 방 안을 못 견뎌서 어렵사리 도둑 외출을 감행하긴 했으나 사실 안과 밖이 크게 다른 건 없었다. 할 거리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왼쪽 길 끝 편에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숲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곧 마을이 나왔다. 몇 번의 도둑 외출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작 산골마을에 불과한 곳의 흥밋거리 역시 금세 고갈되었고, 결국 오늘 내가 가야 할 곳은 숲이었다. 지난번에도 가려고 했으나 더위에 포기했던 곳. 하지만 이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 나는 다소 무거워진 슬리퍼를 천천히 끌었다.
매미 울음은 언젠가 어린 시절 반강제로 들었던 연주회처럼 이어졌다. 머리통을 뒤흔들 정도로 울창하게 울어 젖히다 어느 순간 존재조차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연주 사이의 인터미션 같은 정적이었다. 그렇게 몇 곡쯤 들었을까. 나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로 쨍하게 이어지던 햇살의 중턱, 유일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서 발을 멈춰 세웠다.
“…….”
그늘 때문이 아니었다.
“…….”
눈동자 때문이었다.
‘저 쓸모없는 놈은 어느 날 남정네랑 붙어먹어서 너랑 어멈 눈에 피눈물이 철철 흐르게 만들 게다,’
날씨를 온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웃통, 가무잡잡하게 탄 피부, 까만 반바지, 너절해진 삼선 슬리퍼, 어디 개울가에서 한바탕 뒹굴고 온 건지 푹 젖어 물방울을 뚝뚝 흘려내는 새까만 머리칼, 그리고 그 한가운데.
암흑 같은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나는 왜 노망난 할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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