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휘] 삶에서 투하한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20. 1. 25. 20:32

*J to J 원휘 합작 참여물입니다. 주제어_Jettison: (필요 없는 것을) 버리다.

※ 읽는 사람에 따라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소재(자살)이 활용되어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휘이이이익― 하고, 도로를 긁으며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귓바퀴를 긁는다. 그밖에도 그 바퀴에 딸려 같이 스쳐가는 바람 소리는 새벽빛이 깃들어 어쩐지 쓸쓸하게 귓불에 매달리고, 그 너머 먼 곳에서 오는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면, 종국에 귓구멍을 파고드는 것은 꿀렁, 물결이 이는 소리다. 꿀렁, 꾸르륵, 물은 그렇게 운다. 외로운 소리다. 누군가를 잡아 끌어내려 제 품에 껴안고 싶어서 구르릉, 구릉, 우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 끝에는―…

 

 

“혼자 가시려고요?”

 

 

목소리?

 

 

 

 

삶에서 투하한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원우는 다신 열리지 않을 것처럼 내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한참동안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뜨는 것은 커튼을 두껍게 쳤던 깜깜한 방에 갑작스런 빛의 출입을 허용하는 것과 같아서, 원우는 옅은 보라색의 새벽빛에도 눈살을 가볍게 찡그렸다. 자의로 뜬 것이 아니라 더 눈이 부신 느낌이었다. 원우는 갑작스레 제 잠을 깨운 원인을 바라보기 위해 미약한 신경질이 깃든 눈빛을 죽이지 않은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고, 그와 동시에 경악을 숨기지 못 했다.

 

 

“지금… 뭐 하세요…?”

“네? 앉아 있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왜, 거기 앉아 계세요?”

“왜요? 그쪽도 어차피 이쪽으로 넘어올 거 아니에요?”

 

 

천진난만한 얼굴의 인물이 오히려 원우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어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 기울였다. 어어어, 하, 하지 마세요…! 그리고 원우는 그 조그만 움직임에도 식겁하며 손을 뻗었으나, 그 손도 차마 제대로 다가가지 못 하고 허공에서 어정쩡하게 멈춰 섰다. 그도 그럴 것이, 도무지 원우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눈을 깜박이는 인물은, 살짝만 삐끗해도 그대로 저 아래 시커먼 물속으로 퐁당, 빠져버릴 수 있는 가느다란 난간 위에 위태롭게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우는 허공에 멍청하게 멈춰 선 손을 겨우 한 번 까딱, 움직였다.

 

 

“거기… 서, 내려오세요.”

“왜요? 그쪽이 올라올 거 아니에요?”

“어…”

“어…?”

 

 

다시 한 번 남자의 고개가 아슬하게 기울었다. 원우의 손이 천천히 떨어져 툭, 낙하하는 썩은 과일처럼 허벅지를 쳤다. 눈꺼풀을 한 번 꾸욱 도장 찍듯 느릿하게 감았다 뜬 원우가 마침내 힘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할게요. 안 할 테니까, 그러니까, 내려 와요.”

 

 

 

 

 

 

남자는 이름이 준휘라고 했다. 성은 문. moon? 달이네. 원우는 아직 채 지지 않고 희미하게 하늘 한 구석에 걸려 있는 새벽달에 흘긋 시선을 던지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쪽은요? 네? 그쪽 이름 뭐냐고요. 아, 저요…

 

 

“전원우요.”

 

 

전원우? 와. 자기소개하기 쉽겠다. 전, 원우예요. 이러면 되겠네. 제가 좀 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한 생각보다 훨씬 실없는 말을 하며 준휘라는 사람은 뭐가 혼자 납득이 되는건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좋은건가? 원우가 생각을 곱씹는 사이 그 생각을 끊고 불쑥 눈앞으로 끼어든 것은 준휘의 손이었다. 어느새 희끄무레 동 튼 햇살을 머금은 준휘의 손가락은 다부진 편이었다.

 

 

“악수나 해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인연이에요?”

“연인은 아니잖아요?”

“아…”

“참, 난 중국에서 왔어요.”

“중국? 와. 멀리서 오셨네.”

“네, 그러니까 악수.”

 

 

다시금 이어진 재촉에 원우는 얼떨결에 덥석 제 눈 앞의 손을 붙잡았다. 마침내 제 손을 잡아준 원우에 준휘는 만족스럽다는 듯 음, 하며 손을 한 번 크게 흔들었다가 놓더니 원우의 주머니 쪽을 흘긋 턱짓으로 가리켰다.

 

 

“몇 시예요, 지금?”

“네? 아. 잠시만… 지금… 여섯… 시, 반이요.”

“일어나요. 가자. 내가, 해장국 죽여주는 곳 알아.”

“네? 아…. 말을… 참….”

“왜요? 아. 방금 죽으려고 했다가 살아난 사람한테 죽여준다니까 좀 그런가?”

“… 어휘력이 좋은 건지 이상한 건지 모르겠네.”

 

 

원우의 말에 준휘는 하핫, 하고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웃음을 뱉었다. 비웃음도, 즐거움도, 허탈함도 아닌, 그저 순수하게 흘러나오는 웃음에 가까웠다. 근데 우리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을 먹어요? 그러게요. 근데 그쪽 보니까, 취하긴 한 것 같길래. 저요? 아뇨, 저 술 안 마셨는데. 술에만 취하는 건 아니잖아요?

 

 

 

 

 

 

정신 차리고 보니 시야에 들어찬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면서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원우는 저와 마찬가지로 거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제 옆자리의 준휘를 바라 보았다. 내내 웃거나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던 준휘도 지금은 꽤 힘든지 눈이 감겨 있었다. 땀으로 인해 옅게 물기가 어린 콧등에 잠시 시선을 두던 원우가 조용히 물었다.

 

 

“근데, 우리 이래도 돼요?”

“와, 원우. 질문 너무 늦었어.”

“아니, 그런… 가. 그런,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안 물어볼 수도 없는 질문이잖아요.”

 

 

원우의 질문에 눈을 감은 채 입술만 달싹이던 준휘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드디어 완전해진 듯한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원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순간, 준휘는 아예 원우 쪽으로 몸을 돌아누웠다.

 

 

“이런다는 게 무슨 의미야?”

 

 

예상치 못 한 질문이었는지 원우의 눈동자가 도르륵, 눈 가장자리를 따라 굴렀다.

 

 

“아니, 어… 일단 우리 오늘 처음 봤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통성명, 정도밖에 안 했고.”

“그런데?”

“그런데 이렇… 게, 몸, 섞어도, 되냐고.”

 

 

그 말에 준휘는 아무 대답없이 눈을 한 번 깜박, 였다. 기다란 속눈썹이 내려갔다 올라가는 틈 속에서 만들어지는 눈빛이 지나치게 맑아 원우는 되레 제 질문이 이다지도 비상식적인 것이었는지 고민해야만 했다. 그리고 준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째깍, 째깍, 싸구려 모텔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어색한 공백 사이로 침투하려 해 원우가 씻겠다는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준휘는 원우의 손을 잡아끌어 제 가슴팍 중앙께에 가져다 놓았다.

 

 

“여기. 뭐 있는지 알아?”

“무슨…,”

“안 느껴져? 두근, 두근. 뛰잖아.”

“아. 심장.”

“그거면 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지. 첫눈에 반했다, 그런 레퍼토리인가. 원우의 미간이 의아함으로 슬쩍 찌푸려지려는 찰나, 준휘는 원우의 손을 놓고 말을 이었다.

 

 

“조금 전까지 까딱하면 숨도 못 쉬고 있을 뻔했는데, 섹스가 대수야?”

“아.”

“오늘이, 여동생 세 번째 기일이야.”

“아… 아?”

 

 

준휘는 원우가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차마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준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딱 3년 차에,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어서. 오늘이 그 날이라, 그렇게 하려고 했었는데. 거기 원우가 있었어.”

“…….”

“그래서 아, 잘 됐네, 혼자 가는 길에도 혼자가 아니라니, 되게 운 좋다―, 그러고 있었는데 원우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 아.”

“그렇다 보니, 그냥. 나한테 오늘을 준 사람을 좀 오래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

“그게 다야.”

 

 

말을 끝맺고 준휘는 다시 돌아누워 천장을 곧게 바라보았다. 원우는 말없이 그 모습까지도 눈에 담다 이내 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축축한 땀방울이 손바닥에 붙어 끌려 내려가면서 미약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나한테는 안 물어보네요.”

“굳이. 개인 사정이잖아. 나는 내가 말했고요.”

“… 그럼 내일도 한 번 서로 줘 볼래요?”

“뭐가요?”

“내일도, 보자고요.”

“아….”

“솔직히, 좀 자신 없어요, 나는. 거의 모든 걸 날린 거나 똑같거든요. 정말 친한 친구 믿고 전재산 꼴아박았다가 거지 되는 얘기, 많이 들어봤죠? 그런 흔한 얘기가 내 스토리라.”

“음.”

 

 

원우는 아예 준휘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 누웠다. 준휘의 시선이 잠시, 원우쪽으로 기울여 다가왔다.

 

 

“그런데 오늘 일은 진짜 안 흔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안 흔한 일 겪은 사람끼리 좀 위태롭게 서로 매일 만들어줘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원우, 그거 혹시… 동정이야?”

“너를? 아니, 준휘 씨를? 설마.”

 

 

원우는 헛웃음을 웃곤 덧붙였다. 차라리 나를 동정하는 걸 걸. 준휘가 조용히 숨을 내쉬며 색색거리는 소리만 가만히 방을 메울 무렵, 원우는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씻고, 너도.”

“… 원우.”

“어?”

 

 

준휘의 손이 느릿하게 원우의 손목에 감겼다.

 

 

“나, 갑자기 든 생각인데, 사랑이나 죽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 무슨,”

“어차피 심장 떨어지는 건 똑같잖아.”

“아….”

“그런 거면 그냥 한 번쯤은 그런 거에 휩쓸려서 결정 내려도 되지 않을까, 싶네.”

 

 

내일 또 보자, 우리. 준휘가 말했고, 원우는 눈을 깜박, 감았다 떴다. 고양이들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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