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밍] 폴리와 줄리_1
2020. 1. 7. 16:14그가 지나간 자리에선 언제나 유칼립투스 향이 난다.
아니, 언제나라고 하기엔 어렵다.
나보다 한 학년 위인 그가 오후 7시쯤 학교에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오면 차가운 유칼립투스 향이 난다.
책상에 앉아 문제집만 내려다보고 있어도 나는 등 뒤에 그가 찾아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부러 돌아보지 않는다. 대신 등을 더 꼿꼿이 편다.
문턱에 기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곧은 시선이 점차 따가워질 때면, 똑똑, 하고 나무 문턱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그제서야 나는 등을 돌린다.
흰 반팔티와 회색 추리닝 반바지를 입고 있는 그의 머리칼 끄트머리에서 똑, 또옥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목에 걸쳐진 하얀 수건에 스며든다. 늘 보는 무표정이다.
“뭐해?”
“숙제.”
“으응.”
그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그는 내가 펴놓은 문제집이 보여주기용에 불과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방문도 부러 열어 놓은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지나가다 우연히 방문이 열려 있어 들른 것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 표정을 모른 척한다.
“저녁은.”
“먹어야지.”
“그럼 내려와. 밥 먹게.”
“그래.”
군더더기 없는 내 대답이 떨어지면 그는 미련도 없었단 듯 등을 돌려 아래층으로 가버린다. 나는 오늘도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던 문제집을 덮는다.
우리는 한 식탁에 마주 앉아 있지만 대화는 별로 주고받지 않는다. 평일 저녁은 늘 둘이서 마무리한다. 각자의 직장에서 늦은 업무를 마무리짓고 있을 부모님은 여덟 시 반도 넘어야 돌아올 것이다. 그는 나보다 약간 더 빠르게 접시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싱크대에 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챙그랑 챙그랑 요란하다.
“오늘 설거지 누구 차례더라?”
“나.”
“그래.”
월수금은 그가, 화목토는 내가 설거지를 한다. 헷갈리고 싶어도 헷갈리기 어려운 약속임에도 그는 꼭 저녁 식사 후에 설거지 당번을 묻는다. 나는 또 대답을 한다. 바깥은 아직 밤기운이 없다. 그는 냉장고를 한번 열어보곤 냉장고 문 뒤에서 중얼인다.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혼잣말 같은 말이지만 나는 그 말이 내게 향한 것임을 안다. 나는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한다.
“나 설거지 끝내고.”
“그럼 너무 어두워. 다녀와서 해.”
“그래.”
나는 그의 물음엔 별달리 망설이지 않는다. 빈 그릇을 싱크대에 대강 두며 그를 본다.
“그러고 나가게?”
“왜?”
“아니.”
머리 젖었잖아. 나는 그의 흰 반팔티 목깃에 번지는 물방울 자욱을 보며 말한다. 젖은 머리칼에 깃든 냉한 유칼립투스 향이 내 가슴에도 저릿―하게 퍼진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만다. 우리는 서로 유칼립투스 나무 한 그루씩을 지닌 채 한여름 밤공기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여름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서걱인다.
“어디 갔다 오니?”
빈 아이스크림 막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흔들며 현관에 들어서자 부엌 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신을 벗은 그가 대답했다.
“아이스크림 사러요. 좀 더워서.”
“또 한솔이가 먹고 싶댔지. 얘, 너는 네 형 고3이니까 방해하지 말래두.”
“아니에요, 제가 먼저 말한 거예요. 오늘따라 좀 먹고 싶어 가지고.”
“엄마는 무슨. 만날 나 보고만 그러지.”
오늘도 늦으셨네요. 그는 아직도 엄마에게 존대를 썼다. 응, 민규야. 요즘 일이 많네. 고3이니까 엄마가 더 챙겨줘야 하는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접어 웃었다. 하지만 나는 둘 사이에 배려로 포장된 어색함이 얇게 쳐져 있음을 안다.
“그럼 전 먼저 올라가 볼게요.”
“그래. 과일이라도 줄까?”
“아뇨, 괜찮아요.”
엄마의 친절을 그는 조금 거북스러워했다. 조용하게 사양을 표하고 계단을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보지 않는 척 바라다봤다.
형.
내가 그에게 불러야 하는 호칭이다.
이는 내게 부조리와 불합리의 표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숙명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도덕이다.
형.
그는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정말 드문 것은 내가 그를 형이라 부르는 일이다.
그를 형이라 부르려 할 때면 나는 온 입안에 혓바늘이 돋는 것과 같은 고통과 메스꺼움을 겪는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 단어는 내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한 채 목울대에서만 울렁이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남기고 간 유칼립투스 향을 음미한다.
보도블록 사이에 짓뭉개진 은행에서 콤콤한 냄새가 올라오고 낙엽이 눈처럼 쌓이기 시작하던 작년 가을 중턱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얘가 한솔이야, 우리 아들 잘 생겼지?”
이야- 사진보다 훠얼씬 잘 생겼네- 자연스레 입에 발린 말을 하며 내게 악수를 청하는 그가 '김 변호사님'이라는 사실은 굳이 그의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달 전부터 엄마의 입술 새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던 존재였다. 이번에 김 변호사님이랑 갤러리 보고 올 거라서 조금 늦을 거야. 오늘 김 변호사님이랑 저녁 식사 있는데… 아들, 혼자 괜찮을까? 김 변호사님, 김 변이랑, 성규 씨가― 엄마가 그를 칭하는 호칭이 변할수록 나는 내가 조만간 생길 새로운 관계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결과였다. 나는 최대한 표정 변화 없이 그의 손을 맞잡으려 애썼다.
“안녕하세요. 최한솔이라고 합니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만날 때마다 너네 엄마가 네 칭찬을 아주 그냥, 온 동네가 떠나가라 했는데 그게 빈말은 아닌 거 같네. 엄청 의젓하고, 응. 그치? 내가 자랑할만한 아들이라니까. 적응이 되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 닭살이 돋는 남녀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나는 엉덩이 밑에 가시가 적어도 2만 개는 돋아난 자리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를 티 내는 대신 나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유리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넘겼다. 목젖을 간질이는 차가운 액체의 감촉마저 도피처가 될 수 있음을 막 깨닫는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도 얼른 소개해줘야 하는데. 얘가 학원이 조금 늦게 끝나서.”
슬슬 오긴 할 거야. 그가 6시 13분을 막 지나가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한 말에 나는 속으로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버지보다 익숙지 않은 존재가 오고 있었다. 17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는 형이 생긴다. 형. 나는 조용히 혀를 굴려 입안으로 일음절짜리의 짧은 단어를 발음해보았다. 낯설기 짝이 없는 단어였다. 그리고 그 낯섦을, 낯선 이는 눈치챘던 것일까. 형, 이라고 한번 부름을 끝맺자마자 그 단어만큼이나 생소한 얼굴이 내 맞은편에 자릴 잡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 왔니. 인사드려라, 이 분이 요즘 아빠랑 만나고 계신 미향 씨. 그 옆에 앉은 잘생긴 녀석은 한솔이. 최한솔.”
“안녕하세요, 김민규입니다. 아버지께 듣던 것보다 훨씬 고우시네요.”
입에 발린 소리가 이 부자의 특기인가. 나는 닮은 듯 안 닮은 부자의 얼굴에 가벼운 눈길을 번갈아 던지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입고 온 교복이 뒤늦게 답답해 괜스레 벌어진 카라를 매만졌다. 엄마가 옷 갈아입기를 권했을 때 들었어야 했다는 싱거운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교복이 마치 갑옷처럼 갑갑해진 것은 아마도 방금 도착한 내 맞은편의 이까지 사복 차림으로 등장해서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순전히 혼자만의 의미부여에 갇힌 자폐적인 소외감은 지독한 것이었다. 나는 이미 풀어진 첫 단추가 제대로 풀려있는지 확인하려 한번 더 옷깃을 매만졌다. 손끝이 묘하게 젖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
꼭 무어라고 대화가 오갈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우리 중 누군가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각자의 부모님은 이미 그들만의 세계에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대화를 배경음 삼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부모님의 대화는 아스라이 멀어져 나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한 뼘 정도 두께를 가진 두꺼운 유리벽이 생겼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콧구멍이 답답했다. 우리가 들어있는 수족관의 사방에서 밀려드는 물의 무게가 무거웠다. 나와 그는 물속에 갇힌다. 유리는 두텁고 견고하다. 나는 이 잠수가 숨이 막히기보단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묵직한 잠수는 챙그랑, 하고 음식 접시가 내 앞접시와 부딪는 소리에 손쉽게도 깨져버렸다. 두 명이었던 우리는 다시 네 명이 됐고, 물은 순식간에 죄다 새어나가 버린다. 깨진 유리벽 틈새로 온갖 소음이 밀려든다. 우리는 마치 밀회 따위는 한 적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며 부모님의 대화에 자연히 녹아들었다. 서로에게서 시선이 떨어졌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고 나는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눈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의 잠수는 아주 찰나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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